본문 바로가기
Russia Story/이런저런 소식 News

러시아 졸업생 축제와 붉은 돛단배의 매혹

by 차가운 가을 2009. 6. 25.
참고로 러시아는 한국과 달리 첫 학기가 9월 1일 가을에 시작하며, 대개 11학년이 졸업 학년이다. 한국에 비해 1년이 짧은 셈이다. 또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확연히 구분되어 6년 또는 3년마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한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보통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한 학교에 다니며 졸업한다. 11년 동안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은 한 학교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는 것이다. 

한 학교에서 같은 친구들과 11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다보니 그 우정은 어쩌면 더 남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처럼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시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대학 입시만 신경쓰면 된다. 물론 9학년을 마치고 희망에 따라 특수 학교에서 10학년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긴 한국보다 입시 경쟁과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러시아에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전통 축제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마지막 종소리(Последний звонок)라고 불리는데, 학교 수업이 다 끝나는 5월 말쯤에 열리는 축제이다. 보통 남학생들은 양복을 입는다. 여학생들은 검은 스커트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하얀 리본을 맨다. 이 의상은 소비에트 시절 여학생들의 교복과 흡사하다. 남녀 학생들 모두 어깨에는 졸업생(Выпускник)이라고 적힌 띠를 매고, 작은 종(bell)이나 그와 비슷한 모양의 물건을 단다고 한다. 학생들은 의상을 갖춰입고 다같이 모여 공연도 펼치고 춤도 추며 축제를 즐긴다. 그리고 특정 장소로 모여 거리 행진도 하고, 분수에도 빠지는 등 자유를 마음껏 즐긴다. 

'마지막 종소리' 축제 때 여학생들 의상 모습. 출처 - Flicker


두 번째 축제는 '졸업 축제'이다. 졸업 시험이 끝나고 졸업식이 있는 당일 열리는 축제로 '졸업생의 밤Выпускной вечер' 이라고 불린다. 보통 6월 20일에 열리며, 학교나 각 지역에 따라 약간씩 날짜가 조정되기도 한다. 이날은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장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어른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남학생들은 양복을 차려입고, 여학생들은 드레스를 예쁘게 갖춰 입는다. 

한국은 졸업식을 마치고 개인적으로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반해, 러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런저런 행사를 마련하고 지원해 준다. 모스크바에서는 '졸업생의 밤'이 다른 지역보다 늦은 6월 23일 열렸다. 보통 크레믈 궁전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올해는 특이하게 붉은 광장에서 펼쳐졌다고 한다. 혹시나 모를 사고를 대비해 경찰들이 자리를 지키고 술은 당연히 금지한다. 그 덕분에 올해도 별일 없이 무사히 축제를 마쳤다고 한다. 

러시아의 경우를 보고 있노라니 한국에서도 각자 개인적으로 졸업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정부나 각 지방 자치 단체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졸업생들을 위한 여러 행사를 주관해주고 지원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학생들이 고생하는 만큼 특별한 날에는 그만큼 배려해주고 지원해 준다면 보다 건전한 졸업식 문화가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학생들이 붉은 광장에 모여 마음껏 자유를 느끼며 해방감을 맛보고 있다. 밤에는 불꽃 놀이까지 열렸다. 

사진 출처 - 리아 노보스찌

붉은 광장의 바실리 사원과 크레믈 시계탑 사이로 불꽃들이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출처 - 얀덱스 포토



뻬쩨르부르크에서도 6월 20일 밤에 졸업생들을 위한 축제가 열렸다. 뻬쩨르부르크에서는 2005년 부터 '졸업생의 밤'에 붉은 돛단배(Алые Паруса)를 네바 강에 띄우는 행사를 하고 있다. '붉은 돛단배'는 알렉산드르 그린의 소설로 언젠가부터 졸업생들의 상징이 되어 1968년 네바 강에 이 돛단배를 띄우는 행사가 처음으로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소비에트 정부의 대규모 민중 모임 불허 방침에 따라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2005년 다시 부활했다. 지금은 많은 뻬쩨르부르크 주민들의 사랑과 호응을 받으며 전 국제적인 행사로 매김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지금 뻬쩨르부르크는 백야가 한창이다. 새벽 2시쯤이나 되어야 어둑해진다. 그래서 불꽃놀이와 붉은 돛단배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새벽 2시가 넘어 이 행사를 시작했다. 

불빛에 비친 붉은 돛은 강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섬뜩하다. 








붉은 돛단배의 모습이 아름다움을 넘어 마치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사진 출처 - http://saint-petersburg.ru


네바강 근처 등대에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다. 곧 이어 불꽃 놀이 시작~~
사진 출처-Flicker

아래 두 장의 사진은 2007년도 축제때의 사진인데 올해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아서 첨부해 보았다. 정말 온갖 꽃들의 향연이다. 강렬한 삼원색이 강과 밤 하늘에 수 놓아진 모습은 처음 보는 듯 하다. 그야말로 동화 속에 나오는 꿈의 정원에 들어온 듯 하다.
사진 출처-Flicker 

강 위로 분수가 솟아 오르고, 불꽃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몸부림치고, 각양각색의 빛들이 반짝이며 현란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평온하게 서 있는 석상 사이로 저 멀리 뾰뜨르 요새가 보이고 분수 옆으로 붉은 돛단배가 지나가고 있다. 


축제 시작하기 전 사람들이 겨울 궁전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마치 모자이크 조각같다. 건물을 경계선으로 사람들의 생동감과 무지개 핀 하늘의 정적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그 색감과 배경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 출처 - 얀덱스 포토